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존 F. 케네디 (문단 편집) === 취임식 연설 === [youtube(PzRg--jhO8g)] 케네디의 대통령의 취임 영상. 잘 보면 이 동영상에는 전후 [[미국 대통령]]이 5명이나 등장한다. [[해리 S. 트루먼]],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린든 B. 존슨]], [[리처드 닉슨]], 그리고 케네디 본인. 다만 대통령에 재직한 순서가 트루먼, 아이젠하워, 케네디, 존슨, 닉슨이라서 촬영된 시점 기준으로 따질 경우 이 영상에 등장하는 미국 대통령은 총 3명.[* 닉슨은 전직 [[미국 부통령|부통령]], 존슨은 현직 [[미국 부통령|부통령]] 자격으로 참석한 것이다.] 이 5명의 재임 기간은 1945년부터 1973년까지 총 28년에 달한다.[* 이 영상에 등장하는 5명의 대통령 중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한 명]]을 제외하고는 다들 임기의 시작 또는 끝이 순탄치 않았다. 트루먼과 존슨은 [[프랭클린 D. 루스벨트#s-2.4|전임 대통령]]의 급서로 인해 대통령직을 승계한 사례이며, 케네디는 첫 임기를 끝마치기도 전에 [[존 F. 케네디 암살 사건|암살당했고]], 닉슨은 재선까지는 성공했으나 2번째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워터게이트 사건|불명예스럽게 퇴진했다]]. 그나마 예외였던 아이젠하워조차 [[미군|예전 직장 문제]]와 [[리틀록 사건|인종 갈등]]으로 인해 여러 모로 골치를 앓았다.] >'''"And so, my fellow Americans, ask not what your country can do for you, ask what you can do for your country. My fellow citizens of the world, ask not what America will do for you, but what together we can do for the Freedom of Man."''' >자, 미국 국민 여러분. '''국가가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 묻지 말고, 여러분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자문해 보십시오.'''[* 케네디의 가장 유명한 발언 중 하나로, 사실 이 말을 처음 쓴건 클리블랜드 대통령이라고 한다. 다만 이 문장의 경우 한국에서는 [[국가주의]]의 표본처럼 인용되는 경우도 많은데, 정작 뒷 문장을 보면 그야말로 [[문맥을 무시한 인용]]이다.] 그리고 세계의 시민 여러분, 미국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베풀어 줄 것인지를 묻지 말고 우리가 손잡고 '''인간의 자유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자문해 보십시오.'''[* 결국 이 문장의 앞 내용은 '우리 세대는 최악의 위기 속에서 자유를 지킬 역할을 부여받았고, 우리는 그것을 책임지고 수행해야 한다는 내용이고, 생략된 이 문장의 뒷 내용은 "여러분들이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만큼 우리 '''정부에게도 요구하라. 우리 정부는 준비가 되어 있다.'''"라는 내용이다. 즉, 핵심은 '''"미국 국민, 정부, 전세계인들 모두 실천하여 자유를 지키자."'''라는 내용이다.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헌법을 전제로 실천하고 국가가 잘못된 길로 가지 않게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국민(주인)들을 국가가 얼마든지 뒷바라지 해주겠다는 내용을 정반대로 국가주의라고 이해하면 일종의 [[악마의 편집]]이라 볼 수 있다. [[http://www.jfklibrary.org/JFK/Historic-Speeches/Multilingual-Inaugural-Address/Multilingual-Inaugural-Address-in-Korean.aspx|연설문 전문(한국어 번역)]].][* 당시 미국이 시행하던 징병제와 시기상 가까운 베트남 전쟁에 본 연설을 끼워맞추며 비판하려는 해석도 존재하나, 이는 연도를 잘못 맞춘 억측이다. 케네디가 재임 중일때 이미 베트남전쟁의 확전의 기운이 보이는건 사실이었지만 케네디 본인은 본 항목에 나온 그대로 오히려 베트남 확전을 경계하고 발을 빼려고 했다는 증거가 많으며, 무엇보다 케네디 생전 베트남은 미국이 개입중인 여러 냉전기 분쟁지역 중 하나에 불과했고, 미군의 개입도 간접적 지원에 머물렀지 후임자 존슨, 닉슨 시절 처럼 대규모 지상군 파병도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자연스럽게 따라서 베트남전 시기 흔히 생각하는 파월장병의 사회적 처우 문제도 아직 부각되지 않았던 시절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